고교학점제와 자사고폐지는 결이 맞는데, 현 정부가 이를 뒤집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결이 맞지 않는 정책을 버무려버린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
가장 먼저 우려되는 점은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자사고 출신 학생이 상위권 대학 합격생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란 전망 때문입니다.
의대면접필독서 : https://kmong.com/gig/394176
여기서 하고 싶은 몇 마디를 하고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원래 고교학점제의 도입은 자사고의 폐지와 궤를 같이하여 효과를 그나마 기대할 수 있었는데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변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초등교육법 시행령상 학교설립근거 조항을 삭제하면서 2025년 자사고, 외고, 국제고 폐지가 결정되었는데, 현 정부에서 이법을 다시 고쳐 자사고를 되살리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자사고 중에서 신입생 충원이 제대로 안되거나 일반고와 교육과정에서 차별화가 안되고 국영수 수업만 많은 경우 평가를 통해 정리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외고나 국제고는 왜 존치시키지 않느냐는 의문이 남는데 이 또한 웃깁니다. 정부가 든 가장 큰 이유가 외고와 국제고가 각각 어학인재와 국제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고등학교인데 상당수 졸업생이 이와 관련 없는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교학점제 도입의 가장 큰 이유로 든 내용이 말도 안된다고 여겨지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대부분이 자신의 장래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가진 아이가 거의 없다는 현실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못해서라고 여겨집니다.
당장 이 글을 읽는 분은 귀댁의 자녀를 돌아보십시오. 과연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희망 진학 대학에 대한 고민이나, 장래 하고 싶은 일과 공부에 대해 자각 또는 인지하고 있는 경우나 얼마나 되는지... 제 경험상 10%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어학인재와 국제인재가 되는 경우가 적다고 학교를 없애버린다?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외고나 국제고를 지원하여 진학하였다고하여 그 목적이 과연 어학인재와 국제인재였을까요?
또 정부의 의도대로 순순히 외고나 국제고가 사라져 줄까요?
외고의 경우 일반고로 전환 후 어학을 특수교과목 형태로 운영하거나 외대부고처럼 자사고로 전환하는 방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외대부고의 경우 2005년 개교할 당시 외고였고 공식명칭도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속 외국어고등학교’였습니다. 이후 2011년 전국 최초로 특목고에서 자사고로 전환했고, 현재 ‘용인외국어대학교 부설고등학교’가 되었습니다.
만약 외고 폐지 및 일반고 전환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대원외고 등도 자사고로 전환하려 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그러한 이유라면 과고와 영재고 또한 자유롭지 못할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와서......
고교학점제 하에서는 고1 공통과목을 제외하고 모든 선택과목 내신이 절대평가(성취평가제)로 산출되기 때문에, 자사고가 유리할 것이란 점은 당연해 보입니다. 일반고에서는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개설되는 선택과목의 수준도 자사고의 그것을 따라가지 어려울 것입니다.
수강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수나 퀄리티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로 인한 불이익은 일반고가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현재는 진로선택 과목을 제외한 주요 과목 내신이 상대평가로 결정되기 때문에, 내신에서 일반고가 자사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이지만, 선택과목 내신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그나마 가졌던 일반고 경쟁력이 사라지게 됩니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서울 주요 대학이 지역균형전형이나 학교장추천전형으로 선발하는 수시 학생부교과는 사실상 자사고생들이 합격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전망입니다. 학생부교과전형은 내신 성적으로 정량 평가하는 전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학생부종합전형은 어떨까요?
현재 학종에서는 평가 공정성을 확보한다며 출신고 등의 수험생 정보를 공개하지 않지만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과목 시수 등 기록을 대충만 훑어봐도 지원자가 일반고생인지 혹은 자사고생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사고는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 심화과목의 수가 많거나 주요과목 시수가 대부분 일반고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도록 한다는 취지와 다르게, 대부분의 자사고가 입시 위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국영수 과목 비중을 많게는 60%까지 두는 곳도 있습니다. 사실상 현재의 '출신 고교 블라인드제'는 유명무실한 제도인 셈입니다.
거기다 선택과목의 내신성적까지 절대평가로 바뀌면 자사고 학생들은 학종에서도 날개를 단 셈이 됩니다. 그동안은 일반고에 비해 불리했던 성취도 평가에서도 유리해지고, 일반고 대비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과 교육환경을 누리고 있어 생기부 기록 또한 일반고에 비해 좋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입시의 목적이므로, 상위권 대학일수록 당연히 내신과 생기부 기록 모두가 우수한 자사고 학생을 선발하는 비율이 대폭 확대될 것입니다.
또한 정시의 경우 경제력이 수능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큰 특성상, 정시는 이미 경제력이 높은 가정의 N수생들의 리그가 되어버렸습니다. 2022학년도 기준 서울대 정시 합격생 10명 중 6명이 'N수생'이며, 84.5%가 서울 및 시 출신이란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자사고 1인당 평균 교육비는 2021년 발표 기준 1,747만 원입니다. 이에 더해지는 부대비용까지 합치면 그 부담은 매우 커져 웬만한 가정 학생들은 성적이 좋아도 자사고 진학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자사고가 ‘귀족학교’, '있는 자들만의 리그'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새 정부의 교육부가 2028학년도 대학입학 제도 개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입니다. 고교학점제에 맞춘 대입을 치러야 하는 만큼, 2028학년도 대입 제도는 수능과 정시·수시 전형 등 현재의 대입 체제와는 다른 틀로 개편하겠다는 것인데, 교육부는 대입정책자문회의 자문, 학생·학부모 대상 의견수렴, 정책연구 등을 거쳐 2023년 상반기까지 '대입제도 개편안 시안'을 마련한 후, 2024년 2월까지 개편안을 확정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자사고를 폐지하고 현행 입시제도에서 큰 틀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앞으로 의·치·약·한·수, 서·연·고, 서·성·한, KAIST 등 상위권 대학의 일반고 학생 진학률은 끝도 없이 추락할 것이 뻔해 보입니다.
현 정부는 이 같은 문제가 잠복해 있는데도 자사고 존치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들도 교육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고교학점제와 자사고 양립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사고 존치는 일반고에 진학할 모든 학생들에게 막대한 불이익을 주리라 예상됩니다.
고교학점제 하에서 자사고를 존치하겠다는 것은 결국 일반고와 공교육을 죽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자사고가 존립하는 한 대입 불평등 문제는 해결이 난망하며.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사다리는 사라지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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