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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아재의 프라이빗_노트/대치동아재 이야기

신언서판(身言書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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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언서판'이라는 말이있습니다. 

이는 사람을 선택하는 네 가지 조건이란 뜻으로, 첫째 인물이 잘났나 '신', 둘째 말을 잘 할 줄 아는가 '언', 셋째 글씨는 잘 쓰는가 '서', 넷째 사물의 판단이 옳은가 '판'의 네가지를 보아야 한다 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세번째 '서'는 글씨를 일컫기도하고, 글자체를 일컫기도 합니다.

 

 

아내와 함께 미스트롯2 프로그램을 즐겨보았습니다.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화제의 프로그램이기도 하였지만, 또 그래서 많은 비판을 받은 프로그램이기도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글을 통해서, 동영상을 통해서 등)를 많이 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공감하는 내용도 있었고, 새로 알게 된 내용도 있었고, 비판이 지나치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글을 하나 읽고는 너무 불쾌하였습니다. 

 

기자는 우리 사회의 엘리트이며,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합니다. 더구나 전문기자라면 일반기자보다 더 깊은 경험과 전문지식을 갖춘 기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부 인용하는 전문기자가 쓴 글을 보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 아  래 -

 

시답잖은 감상문에 매주 쏟아진 의견 중 가장 많은 것은 아무개나 머시기가 미스트롯 경연을 심사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재미있으면 그만인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이 30%를 넘어가니 시청자들은 정의(正義)를 요구하고 있었다. 시중에서 실종되고 타락한 정의를 누가 노래 잘하나 하는 TV 프로그램에서나마 지켜주길 원하는 것이다.

미스트롯이란 프로그램은 그렇게 제작진의 손을 떠났다. 시청자 투표 비율을 최종 결선에서 대폭 늘린 것은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누가 1등을 하느냐는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순위가 공정하게 매겨지는가가 가장 큰 관심사가 된 것이다.

 

양지은이 최종 1등에 오른 것은 그럴 만하면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중략

마지막 회 방송하는 세 시간 동안 400만명이 응원 문자를 보냈다. 400만은 경이로운 숫자다. 우리가 잠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용필 공연에서 본 인파가 기껏해야 4만명이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보낸 문자 투표를 생방송에 맞춰 집계하는 것이 제작진의 최대 업무였다고 한다.

작년까지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했던 가수들의 경연이 그만큼 공정의 지표가 됐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미스트롯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민간의 영역은 이처럼 공정의 압박 논리가 여전히 엄격하다. 오늘 한국의 공적 영역에서 과연 공정의 논리는 얼마나 유효한가. 백성들은 무엇 하나 흠 잡히지 않으려고 애면글면하는데, 궐에 앉은 것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이요 사기 치는 설레발이다.

 

미스트롯에 출연한 모든 사람의 노래 실력이 사실은 비등하다. 어쩌면 이들 가운데 1등을 뽑는다는 발상 자체가 유치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이들 참가자야말로 진정한 예술인이요 가수들이라는 사실이다.

가수라는 이름으로 데뷔해서 맨날 뜀박질 하거나 뭘 우걱우걱 먹거나 잡담으로 일관하다가 광고 모델로 나와 통닭이나 피자를 파는 자들이 텔레비전에 한가득이다. 가수가 유일하게 하지 않는 게 노래인데도, 그들은 여전히 가수라고 불린다. 그런 시대에 오직 노래로 자웅을 겨뤄 온 미스트롯 출연자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글 첫 워딩인 '시답잖은'부터 비위가 상했습니다. 자신 외 수많은 사람의 견해를 한마디로 깔아 뭉개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심사가 뒤틀리어 몇가지 더 지적질(?)을 해보고 싶어집니다.  

- 재미있으면 그만인 예능 프로그램 :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규정이 너무 자의적입니다. 

- 사람 이름에 호칭을 붙이지 않는 것도 걸립니다. 이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양지은, 조용필...

- '국민'이 아니라 '백성'이라는 표현도 맘에 들지 않고, '애면글면'이라는 표현도 백성을 약자로 치부한 편견담긴 워딩 선택이라고 여겨집니다. 같은 맥락에서 '궐에 앉은 것들' 이라는 표현도 독선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 노래하지 않는 가수에 대한 비판도 단편적이고 독선적인 잣대라고 여겨집니다. 

 

 

제가 저의  공간에 이 글을 쓰는 것과 전문기자가 다수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것은 차이가 크다고 여깁니다.

 

오늘 저의 오만과 편견이  불편하셨던 분들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