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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아재의 프라이빗_노트/대치동아재 이야기

나훈아와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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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를 한 번 보아주십시오. 머니투데이의 김고금평 기자님이 쓴 글입니다. 저작권자는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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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 출연한 나훈아는 40분간 노래만 부른 뒤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우리에겐 영웅들이 있는데, 그들은 의사와 간호사들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지킨 주인공은 왕이나 대통령이 아니라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등 보통의 우리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소크라테스를 응용한 ‘테스형’이라는 노래를 부를 땐 “세월에 끌려다니지 말고 모가지를 비틀어 (세월을) 끌고 가야 한다”는 인생론도 펼쳤다.

나훈아가 이날 무대에서 사용한 의료진, 보통 국민, 소크라테스 같은 키워드들은 서로 맥락 없는 독립적 형태로 보이지만,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보면 기가 막힐 정도로 세 키워드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 드러낸 ‘말’의 속뜻과 그의 ‘변명’을 따라가봤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신을 믿지 않고 청년을 선동하고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고발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오직 이성에만 충실하고 끝까지 시와 비를 가린 뒤 소신을 말하고 실천하는 지성인이 독배를 마셔야 했던 이유는 그 시대인의 무지나 진리에 대한 외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파이돈’ 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친구 크리톤에게 마지막 말을 이렇게 남겼다.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빚을 갚아 주겠나?”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신(醫神)이다. 아테네에는 병으로부터 회복된 사람은 의신에게 닭 한 마리를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유언으로 남긴 데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 인간 마음속 병을 고치려다가 독배를 마신 자신이 언젠가 인간의 병이 고쳐지는 날, 자신을 대신해서 감사의 뜻으로 닭 한 마리를 바쳐달라는 속뜻이었던 셈.

이 닭 한 마리를 갚을 책임은 크리톤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모든 사람에게 진 빚이다.

나훈아는 코로나19라는 육체적 병을 다스리는 의료진을 향한 찬사를 통해 우리에게 남겨진 빚을 얘기했지만, 그 속뜻은 국민에게 상처 주는 정신적 병에 대한 의신의 또 다른 치유에 대한 희망사항을 꼬집은 ‘예인의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는 ‘변명’ 편에서 ‘무지의 자각’을 통해 지혜는 어느 한 사람에 의해 분양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아테네든 어떤 다른 나라든 행복을 얻거나 발전하는 경우 한 사람 또는 일군의 지도자나 사이비 현자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또는 대중 전체의 지혜의 집결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내가 그(정치가)보다는 현명하다고, 왜냐하면 우리는 둘 다 선이나 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데 그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알고 있다고 믿고, 이에 대해 나는 알지도 못하거니와 알고 있다고 믿지도 않기 때문입니다.”(‘변명’ 중에서)

소크라테스는 지성인의 역할이 권력에 아부하며 일신의 영달을 도모하는 대신, 거리에 넘쳐 흐르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진정한 지혜를 길어내는 데 있다고 봤다.

나훈아가 언급한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등 보통의 우리 국민은 ‘거리에 넘쳐 흐르는 인간의 진정한 지혜’의 산물인 셈이다.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배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축배로 다가온다. 지성인이 마신 독배는 용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남긴 ‘닭 한 마리를 빚진’ 시대가 계속된다면 인간의 병은 더 악화하고 있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의료진으로 시작해 보통 국민을 거쳐 소크라테스로 마치는 나훈아의 3단계 화법이 생뚱맞으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처음 갖게 되는 느낌이나 생각은 어떤 것일까요? 지금 제 글을 읽는 분은 위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나요?

 

솔직히 저는 나훈아씨가 김기자님이 위 글에서 분석한 내용을 의도하셨을까... 라는 점에 강한 의문을 가집니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한 말이 후대에 위와 같이 해석될 것을 의도하고 이야기하였을까... 라는 의심도 합니다. 

 

저의 배움이 짧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또는 자격지심이 발동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저는 김기자님의 윗글이 너무 현학적이라 여겨지고, 나훈아씨의 노래와 말에서 저 정도의 의미를 파악해야 제대로 공연을 이해하고 보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듭니다.

 

저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비평에 대해서도 위와 유사한 감정이 들지만 이동진씨 같은 평론가의 영화평론은 참고하고, 가끔 탄성을 지르며 공감하고, 그분의 평론을 듣고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후에는 저의 부족함에 대한 반성, 그리고 그 분의 도움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경험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위 글은 너무 과하거나, 아니면 제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