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신 사태... 민사고 유감

어린 시절부터 저는 공부할 때 개념에 유난히 집착하는 편이었습니다. 문제를 대할 때면 개념으로부터 풀이가 도출되지 않으면 맘이 편치 않아 전전긍긍하곤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선서문, 강령... 이런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글에도 검사선서문, 의사윤리강령... 등등이 여러 번 인용되었을 것입니다. 선서를 한 사람이라면, 강령을 인지하고 공감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과 자부심으로 여겼던 사람이라면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맹세’와 같은 것도 자신의 인격과 존재를 걸고 한 것이어서 지켜야 한다고 믿는 주의입니다.

 

최근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내정자(지금은 자진 사퇴로 일단락되었지만...)와 관련한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대통령에 대한 아쉬움보다,

정순신이라는 파워엘리트에 대한 두려움보다,

인사검증시스템, 민정수석실의 역할에 대한 여러 갑론을박(甲論乙駁)....

그 어떤 것보다 저에게는 민사고 학생들에 대한 유감이 크게 생깁니다.

 

 

제가 민사고학생들의 존재감을 여실히 알게 된 계기는 아주 오래전, 어떤 TV프로그램에서 본 디베이트 대회였습니다. 그들 모두가 한 명 한 명이 반짝반짝 빛이 났으며, 그들이 커서 어른이 되고, 그들이 이 사회의 중책을 맡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요즘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우려로 변하고 있습니다. 

 

1. 민족사관고등학교 헌장 중 일부 내용입니다.

제1조 (설립목적) 민족사관고등학교는 전국의 뛰어난 영재를 모아 민족혼을 되살리고 미래의 조국을 지키고 이끌어갈 각계 각 층의 지도자를 육성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한다.

제2조 (교육 목표) 본교는 다음 각 호를 교육 목표로 삼는다.

1. 민족 주체성 교육

2. 영재 교육

제3조 (교육프로그램)

① 다음 각 호와 같이 민족 주체성 교육을 실시한다.

1. 우리의 민족문화의 근간인 효도(孝道)와 예절의 교육을 중시한다. (개정 2005.05.19)

2.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하여 이를 교육과정에 체계적으로 반영한다. (개정 2005.05.19.)

 

2. 그리고 민사고의 교훈(校訓)은 이러합니다.

“민족주체성 교육으로 내일의 밝은 조국을 출세하기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자. 출세를 위한 진로를 택하지 말고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택하자. 이것이 나의 진정한 행복이고 내일의 밝은 조국이다.”

 

3. 심지어 그들의 교표(校標)는 촛불입니다. 그리고 그 촛불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부연설명이 있습니다.

초는 자기를 태워 세상을 밝게 합니다. 한 나라의 영재로 태어난 여러분들은 일반 사람들과 달리 조국에 대한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촛불 정신을 본받아 자기가 출세하기 위한 진로를 선택하지 말고 국가에 봉사하며 조국을 밝게 해야 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치 촛불이 자기희생으로 세상을 밝게 하는 것처럼 여러분 영재는 자기 몸을 조국에 바치고 세계복리에 바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촛불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며 우리 학교 마크 가운데 촛불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학생들이 모인 집단,

까다롭고 어려운 입학전형을 통과하여,

상기 헌장과 교훈에 공감하면서,

촛불의 교표아래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왜 의롭지 못하고 잘못된 동료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을까?

설마 강자에게 붙어 약자를 같이 괴롭히지는 않았겠지요?

몇몇이 나서서 바로 잡아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을까요?

유감스럽습니다.

 

자기에게 득이 될 수 있겠다고 싶은 곳에 뻔뻔하게 줄서기를 괘념치 않고,

말뿐이고 자기편만을 위한 공정과,

결코 상식적이지 않은 상식을 내세우면서 상대방과 싸우는

못난 어른들보다 나을 것 없는

미래 꿈나무 엘리트들의 현 주소가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살아갈 미래는 지금보다 좀 더 나아야 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