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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소식/대입

정시확대는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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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확대를 두고 학원가에서는 온갖 가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맞는 말도 있고 그렇지 않은 말도 많은 것 같습니다. 

justice

한 걸음 떨어져서 평소와 다른 눈으로 정시 확대의 의의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님 취임사에서 유명한 문장입니다.

장관 후보자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있는데, 이 논란 차원을 넘어서서 대학입시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달라. 공정의 가치는 교육 분야에서도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작년 91.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문제로 논란이 커져가던 때, 대통령님은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떠나면서 배웅 나온 당··청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교육 원리상 수시가 더 나은 제도라고 해도, 과정의 공정성을 바라는 국민의 뜻에 기초해서 방안을 찾아달라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대통령님의 그 발언으로 정시 확대 가능성이 거론되자,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94굉장한 오해이자 확대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유장관은 정시와 수시 비율을 조정하는 문제로 불평등과 특권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님은 과정의 공정성에 방점을 찍었고 장관은 불평등 재생산 문제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러면 전혀 다른 결론이 필연인데, 이 갈림길에서 대통령님이 자신의 뜻을 관철했습니다.

 

이어 1022일 대통령님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입제도 개편 방향을 밝혔습니다.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습니다.” 이것이 대통령님이 정시 비중 상향을 공식화한 첫 발언이었습니다.

정시의 핵심은 수능 전형이므로, 이를 지금보다 늘리겠다는 의미입니다. 수능 전형은 일반 여론에서 가장 공정하다고 인식됩니다. 그러나 정시 비중 상향은 교육부의 정책방향과 민주당 계열 교육정책 그룹의 노선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통령님의 방향 전환은 너무 급격해 보여서, 이를 조국 대란과 연계시키는 해석이 등장하고, 지지 기반이 흔들리니 정시 확대론으로 반전을 노린다는 해석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정시를 늘린다는 대통령님의 구상은 조국 대란한참 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님은 집권 초부터 정시 확대를 원했지만 교육부 관료들과 전교조 출신 외부 인사들이 정시 확대는 둘 다 절대 안 된다는 기류여서 대통령님도 도리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1022일 대통령님의 정시 비중 상향선언을 조국 대란에 대한 졸속 대응이 아니라 오히려 대통령님이 교육 전문가들의 반대를 뚫고 정시 확대 시도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님은 왜 정시 확대를 원하고, 교육 관료와 정책가들은 왜 반대해왔는지가 궁금합니다.

 

대입 전형의 크게 정시와 수시로 나뉘고, 수시는 (특기자전형, 논술전형을 제하고) 학생부종합전형과 학생부교과전형으로 대분할 수 있습니다. 2020학년도 기준으로 보면, 내신이 가장 비중이 큰 42.5%이고, 학종이 24.4%, 수능이 19.9%로 세 번째입니다.

이 비율은 이른바 괜찮은 대학으로 갈수록 달라집니다. 수도권 대학만 따로 놓고 보면, 학종이 33.1%로 가장 많고, 수능이 25.6%로 그다음, 내신이 21.9%3위입니다.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학종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수학능력시험 점수에 따라 학생을 뽑는 정시는 과정이 공정하다고 받아들이기에 가장 좋습니다. 같은 시험문제를 풀고, 교사나 대학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고, 단순·자명하며 객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정반대에 학종이 있습니다.

학종은 고교 교사와 대학 입학사정관의 판단이 당락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주관적이고 그래서 불공정한 무언가가 작동하리라고 의심받기 쉽습니다. 줄 세우기 시험은 공정하고, 정성평가가 들어가면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은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입니다.

 

정시는 과정의 공정성을 성취하는 반면 결과의 정의에서 중요한 문제점을 발생시킵니다. 여러 통계자료와 학술연구의 결론은 일관성있게 고소득층에게 가장 유리한 전형은 수능이라고 밝힙니다.

전에 한 번 소개해 드린 것처럼, 국가장학금 자료를 이용해 대입 전형별 소득 분포를 추출한 결과를 놓고 보면 수능이 고소득층에 더 유리하다는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 국가장학금은 소득수준을 따져서 주기 때문에, 고소득층 자녀일수록 받을 가능성이 떨어집니다. 내신 입학생 중 48.8%, 학종 입학생 중 45.3%, 수능 입학생 중 35.2%가 국가장학금을 받는다는 사실은 수능이 고소득층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대학은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므로, 정시 확대는 부잣집 아이가 고소득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을 높입니다. , 수능 전형이 늘수록 불평등은 더 크게 재생산되는 셈입니다.

 

정시는 왜 수시보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효과가 더 큰가?

내신 시험은 원리상 같은 학교에서의 경쟁입니다. 출발선이 비슷한 학생들이, 출발선에서 얼마나 더 멀리 갔는지를 놓고 평가받습니다. 가난한 지역 학교에도 전교 1등은 무조건 존재합니다. 그래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효과는 줄어든다고 여겨집니다.

 

수능은 전국 단위 경쟁입니다. 부모가 고소득자이고 교육환경이 좋은 동네에 살수록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래집단의 경쟁 압력이 크고 역할모델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교육 효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강남에 사는 고소득층 자녀는, 학습능력이 비슷한 비강남·저소득층 학생보다 수능을 잘 볼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 학술 논문을 보면, 능력 변수를 통제하더라도 거주지 학습 환경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수능 성적이 달라지는 효과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국 단위 시험의 경쟁에서는 강남과 같은 교육특구에 진입하는 게 결정적으로 중요해집니다. ‘교육특구 입장권은 비싸며, 수능 비중이 늘어나면 더 비싸질 것입니다. 지역 단위 경쟁인 내신과 학종은 이 악순환 구조를 완화합니다. 지역 단위 경쟁이 중요해지면, 성적 좋은 아이들에 둘러싸이는 교육특구 입장권의 매력은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국 단위 경쟁인 정시가 지역 단위 경쟁인 수시보다 불평등 재생산 효과가 큽니다. 이 명제는 제도의 구조와 원리에서 예측 가능하고, 실제 통계도 예측을 뒷받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보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고 더 비난을 받습니다.

 

정성평가의 신뢰 기반은 언제나 객관식 정량평가보다 취약합니다. 조국 전 장관 딸의 논문 제1 저자 파동과 같은 사례의 힘은 통계보다 강합니다. 학종과 같은 정성평가는 신뢰가 핵심 조건인데, 이런 사례는 신뢰를 뿌리부터 뒤흔듭니다.

 

대통령님은 평등·공정·정의를 조화시키는 문제가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드러냈습니다. 과정의 공정을 대표하는 제도(수능)가 교육특구의 입장권을 살 부모의 능력에 좌우되는 한, 이 제도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정의롭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반대편 대안인 내신과 학종은 평등·공정·정의를 함께 보장한다고 볼 수 있을까에 대해, 내신과 학종은 결과가 정시보다는 덜 불의할 가능성이 높지만 학생들이 훨씬 더 싫어하는 제도입니다. 고교 생활 3년 내내 입시를 치르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떄문입니다. 대학입시가 인생에 갈림길이라는 인식이 있는 한 이 압력을 완화할 방법은 없습니다.

더욱이 학종은 교사의 권한을 크게 올리는데,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의 권력관계가 잘못 작동하면 학생의 삶은 더 팍팍해지게 됩니다. 이것은 또다른 차원의 불의입니다. , 어느 학교에서 어떤 교사를 만났는지에 따라 학생부 기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기회의 평등 관점에서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과정의 공정성은 주관이 개입하지 않고 같은 기준이 적용될 것을 요구합니다. 결과의 정의로움은 불평등 재생산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억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2020년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 이 두 요구는 구조적으로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고도성장기보다 불평등이 심화되어 출발선이 달라지는 정도가 커졌고, 그 출발선의 차이가 다시 성취의 차이에 명백히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이 정시 확대를 내걸면서 준 시그널은 가장 직관적이고 타당해 보이는 접근일 수 있으나, 위 딜레마를 오히려 강화할 수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