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해킹사고를 접하고는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일인입니다. 당황스럽고 짜증도 납니다.
한편 돌이켜 보면 정말 놀라은 세상입니다. 손으로 쥐고 다닐 수 있는 정도 크기의 컴퓨터와 TV와 전화기 역할을 모두 하는, 그리고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는 모바일 기계를 한 사람이 한 대씩 소유하는 세상이라니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고시원 생활 할 때 공중전화기 앞에 오랜 시간 줄서서 지금의 아내인 사람에게 애끓는 전화를하고... ‘삐삐’라는 기계가 주는 신기함에 놀라고, 군대에서는 타이핑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컴퓨터를 만나고... 큰 벽돌만한 휴대전화를 가진 친구에게 ‘전화가 진짜 걸리기는 한 거 맞냐’며 물어보던 시기를 지나고...
그러나 세상은 이렇게나 소위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는데 공부, 교육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몇 세대를 이어 변함이 없습니다. ‘이게 맞나?’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요즘 중간고사 기간을 지나면서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보인 여러 행태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단지 학문의 수단이 아니라, 계층 상승과 생존의 도구로 여겨져 왔습니다. 특히 부모 세대는 ‘공부만이 살길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부모님도 물론 그러셨습니다.
그러나 요즘 사회는 디지털, 글로벌, 창의(創意)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그 속도는 제 부모님 세대가, 또는 제 세대가 경험한 변화보다 훨씬 더 빠르며 예측 불가능합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과연 부모의 가치관이나 선택이 여전히 유효할까요? 이런 변화를 겪고나서도, 또 겪고 있으면서도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의 입장도 이해됩니다. 저도 두 아이의 부모이니까요.
많은 부모들은 치열한 경쟁과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이들은 학벌이 사회적 기회와 안정된 삶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녀에게도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주고자 공부를 강요하게 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공부만이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책임지기에 아직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특히 청소년기는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선택이 많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보다는 단기적인 편안함이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공부가 싫다"고 말하는 것은 일시적인 기분일 수 있으며, 부모는 자녀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고마워할' 선택을 대신 해주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사실 이 포인트가 부모의 전횡(?)을 포장해주는 가장 훌륭한 포장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높은 경쟁률과 취업난을 겪고 있으며, 안정적인 직업군은 한정돼 있으며, 특히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 등은 여전히 학벌 중심 채용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자녀가 공부를 멀리하고 다른 길을 선택할 경우, 사회적으로 낙오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부모들은 우려하며 이는 단순한 강요가 아니라, 자녀의 생존을 위한 방어적 조치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4차 산업혁명, AI, 디지털 경제의 확산으로 인해 노동의 구조와 직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창의력, 공감능력, 자율성과 같은 소프트 스킬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의 ‘정답 중심’ 교육보다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시되는 사회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과거의 방식인 ‘무조건적인 공부 강요’는 오히려 자녀의 창의력과 주체성을 억압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모가 정한 삶의 경로를 따르며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자기 결정권의 결여에서 오는 무기력으로 이어지며, 정신건강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다'는 식의 내면화된 압박은 장기적으로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제가 겪었던 경험이며, 사실 지금도 이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모님에 대한 반감과 원망으로 남아 스스로에게 내내 딜레마로 작용하였습니다.
또한 오늘날 성공의 기준은 단일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성공’ 외에도 예술, 창업, 공익 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공부보다는 다른 능력을 통해 사회적 가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만이 길이다"라고 강요하는 것은, 이 다양한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셈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부모의 강요가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 근저에는 사랑과 책임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자녀의 주체성과 창의성, 그리고 삶의 다양성을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정해진 정답’을 외우는 능력보다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 질문을 발견하는 과정은 각자의 삶에서만 가능하며, 이 과정에 부모가 지나치게 개입할 수 없고 개입해서도 안된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결국 자녀는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며, 그 선택의 책임 또한 자녀 본인이 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부모의 역할은 ‘강요’가 아니라 ‘가이드’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 가이드의 경계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재설정이 필요한 것도 힘이 들긴 합니다.
자녀가 자신의 가능성과 흥미를 탐색하고, 실패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진정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육적 사랑이 아닐까요?
특히 부모 세대가 자란 환경과 지금 세대가 살아갈 환경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과거에는 효율적이었던 전략이 현재에는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경험 기반 조언’은 필요하되, 그것이 ‘강제’로 작동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입니다. 이럴수록 자녀가 스스로 판단하고 적응해 나가는 능력을 갖추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미래형 부모의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 노릇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내 부모님은 저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저는 그들을 원망하는 맘을 갖고 있고, 저도 역시 최선을 다 했고, 지금도 최선이라 여겨지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서 원망을 듣게 될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부모의 강요를 사교육 분야에서 끊임없이 부추기는 경향이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래 왔으니까요. 부모님들의 불안이 커지고, 예전 공부에 대한 관성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사교육 시장이 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치동아재의 프라이빗_노트 > 대치동아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0) | 2025.04.08 |
---|---|
다시 또 한 걸음 (5) | 2024.10.26 |
존속살인 (0) | 2024.06.25 |
공신[工神]의 의무 (0) | 2024.06.20 |
전교 1등 되는 법 (0) | 2024.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