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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아재의 프라이빗_노트/친구, 선후배님

왜 하필 '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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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통화를 오래 하였습니다. 설 인사도하고 가족들 안부도 묻고 덕담도 하고... 이 친구 뜬금없이 묻습니다. 

"니...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속담알재?"

"응, 알지. 근데 와?"

"똥이 더러운 거재? 개는 나쁜 놈으로 치면 될끼고... 그채?"

저는 이 친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 싶어서 계속 대답을 합니다. 

"응, 그기 뭐?"

"근데 수많은 더러운 것 중에서 '똥'과 견줄만한 것으로 '겨'를 갖다 붙였는지 니 아나?"

"응? 몰라. 듣고 보니 궁금하긴 하네. 왜 하필 겨인지? 다른 더 더러운 것들을 가져다 붙여도 될낀데..."

"고맙다. 이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 준 사람은 니가 처음이다. 와이프한테도 이야기해 줬다가 꿍사리만 들었다."

"뭐라꼬? 근데 이런 씰데 없는 것을 물어본 것도 니가 첨이다."

"내가 10분 후 전화를 다시 할낑께 그동안 '왜 겨인지' 함 생각해 봐"

그리고 친구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피씩 웃으며 컴퓨터를 열어 그 속담을 검색하였습니다.

이 속담은 겨가 냄새나는 똥보다 더러울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보고 더럽다고 흉을 본다, 즉 자기에게 있는 큰 허물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작은 허물을 비웃는다...... 정도의 설명이었습니다. 유사한 영어 속담도 소개되어 있고...

이리저리 알아보는 도중 궁금증이 더 커졌습니다. '썩은 된장이 묻었다'라고 할 수도 있고, '흙이 묻었다'고 할 수도 있고, '코가 묻었다' 등등 속담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다른 더러운 것들도 많았을 텐데......

그리고 그런 것에 궁금증을 가지고 오랫동안 연구를 해오고 있다는 친구 놈이 더 궁금했습니다. 이 친구는 전에도 종종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저를 황당하게 하곤 했습니다.

그중에는 '전 세계 언어의 기원을 연구하다 보면 각 나라, 각 민족이 쓰는 단어가 그렇게 발음될 수밖에 없으며, 그 기원은 같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는 '봄'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spring', 한자로 '春'인 이유가 있으며, 원래 발음도 같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자세한 설명을 듣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으며, 엉뚱하지만 대단한 친구라고 여겼습니다. 

10분은커녕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생각해 봤나? 왜 겨인지?"

"모르겠는데, 왜 하필 겨인지"

"내가 연구해 봤는데, 다른 속담도 마찬가지고 대부분 삶에서 중요한 의식주가 소재가 되어 활용되거등. 옛날 못 먹어서 배고픈 시절 쌀도둑이 많았을꺼 아이가, 그채?"

"똥 묻은 놈이라는 것은 벌써 쌀 도둑질을 해서 그 훔친 쌀로 밥을 해 먹고 소화가 돼서 똥까지 싼 놈이라는 거지. 근데 겨 묻은 놈이라는 것은 이제 막 쌀을 훔치려다가 걸린 소위 미수범이라는 거지. 겨가 쌀을 찧을 때 생기는 껍데기 쪼가리아이가, 그채?"

"즉, 이 말은 자기도 도둑질한 나쁜 놈이 다른 도둑질을 하려는 놈을 보고 흉을 본다는 의미 인기라. 알것나?"

친구는 의기양양해하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듣고 보니 재미도 있고,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 친구가 대단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 놈 정말 한가하구나. 어떻게 이런 것을 궁금해할 수 있고 한참 연구를 해 왔다는 거야?'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그럴듯하지요?

혹시 궁금해하실 분이 있을까 드리는 말씀인데... 그 친구는 역사학자나 언어학자가 아니라 그냥 의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