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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소식/대입

훌륭한 교수님이 학생부를 대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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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베리타스 알파에 기고한 정재찬 한양대학교 입학처장님의 글입니다. 읽고 배운 바 크고, 스스로에 대한 많은 반성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된 글이어서 그 일부를 공유합니다.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학생부에 담긴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그들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사춘기 학창 시절을 보내는 동안 부서지기도 했을 그 마음들이 오는 것이다.

그 마음속 갈피까지 이해하려면, 우리는 가슴 속까지 파고드는 저 바람을 닮아야만 한다. 그런 바람의 마음으로 그들의 속살을 속속들이 더듬어 보노라면 웃음과 눈물이 나지 않을 도리가 없고, 그러니 우리도 필경 그들을 환대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학생부종합평가는 바로 저 시와 같은 것이라고 믿는다. 객관성의 신화를 믿는 이들은 물리적인 수치로 양화 된 기록을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있다. 95점과 객관적으로 동일한 것은 95점이다. 맞다. 그러나 동일한 것은 점수이지 사람이 아니다. 95점을 받은 두 사람은 정작 천양지차로 다르다. 한눈에 봐도 다르고 아무리 봐도 다르며 들여다볼수록 다르다.

사람마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 일생, 그 마음의 갈피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입학 전형은 복잡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일 따름이다.

공정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입시 제도이든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편에서 유불리의 문제로 접근하는 한, 누구에게나 공정한 답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마련인 탓이다.

가령, 높이뛰기 1미터 기록을 보유한 신장 2미터의 학생과, 90센티미터를 기록한 신장 1.7미터의 학생 중 과연 누구를 선발해야 공정하다고 할 것인가. 한 가지 동일한 능력을 비교할 때도 이러하거늘, 원래가 같지 않은 종류의 능력을 재야 할 때는 어찌 해야 할까. 그럼에도 그 차이를 무시하고 그저 한 번에 한 줄로 세워놓고 특정한 기준에 따라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공정하지도 타당하지도 않은 일이 아니겠는가. 다른 능력은 다르게 평가하는 것이 옳다.

 

그런즉 한 사람에 대해 무려 삼 년의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시선과 분야에서 공들여 기록한 바를 믿어야 하고, 그것을 이번에는 또 여러 사람이 다양한 관점과 척도에서 정성껏 들여다보고 평가한 결과를 신뢰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그 정도의 상호주관성이라면 정량적인 수치보다 더 공정하고 객관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놀랍게도, 실은 그것이 우리가 진실로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키가 얼마고 재산이 얼마고가 아니라 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가 살아온 삶의 스토리를 들어가며 이해해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알겠다고 하는 바로 그 방식 말이다.

 

무엇보다 다행하고 희망적이며 중요한 사실은 대학이 입시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라는 점이다. 부족한 인재도 훌륭한 인재로 키우며, 훌륭한 인재를 뽑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훌륭한 인재로 길러내야 대학다운 대학인 것이다.

그러기에 대학 또한 과거에 얽매인 기준과 이기적인 욕망을 내려놓고 미래지향적인 기준에서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한 착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한다.

 

학생부도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그런가 하면 고은 시인의 <그 꽃>처럼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갈 때 보게도 된다. 때때로 그 중에 하나를 취해야 하는 선택이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내 눈과 마음에 들지 않은 꽃은 나와 취향이 다른 이가 고르리라 믿으면 된다.

긴 호흡으로 그렇게 가다 보면 어느덧 우리 학교와 사회가 모두 예쁜 꽃밭으로 변해 있지는 않을까. 꿈이라고 해도 좋다. 다만 부디 우리들의 어린 꽃들에게는 희망을 주시길. 환상이라 해도 좋다.

다만 초임 입학처장의 이 봄 한철 낭만만은 부디 꺾지 마시길.

그래서 오늘도 환대하는 마음으로 꽃다운 학생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진솔한 마음이, 그리고 더 진솔하고자 하는 최선의 노력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한 학생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담겨있는 한 편의 시와 같은 학생부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존경스럽습니다. 

다만 궁금한 점이 하나 툭 튀어 나옵니다. 제가 인용하는 내용에서 붉은 볼드체로 표시한 부분(한 사람에 대해 무려 삼 년의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시선과 분야에서 공들여 기록한 바를 믿어야 하고......)입니다. 교수님은 고등학교 현장에서 몇몇 학생부가 어떻게 기획되고 만들어지는지, 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의 학생부가 무관심과 무성의 속에서 던져지듯이 만들어지는지 아실까요?

 

제가 쓴 많은 글을 통해서, 저는 일선 고등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날 선 비판을 한 적이 많습니다. 오늘 글 또한 그 연장선입니다. 믿을 수 없고 한숨만 나오는 행태를 너무 많이 목도합니다. 매체에 나오는 몇몇 선생님들의 노력과 정신은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의 선생님들에 의해 빛이 바래집니다. 

 

당장 코로나로 말미암아 부득이하게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아신다면 아연실색하실 것입니다.

교사라는 지위에 부여되는 많은 기득권이 어떻게 행사되고 남용되는지 그 실체를 아신다면 아연실색할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폭행을 하는 학부모가 가끔 뉴스에 나오곤 하지만, 선생님에게 찍힌 학생과 학부모가 어떻게 당하는지, 찍히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 감내해야 하는지를 안다면 아연실색할 것입니다. 이건 뉴스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너무 만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일선 선생님들이 모두에게서 칭찬받고 학생과 학부모에게서 존경받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