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남 마산 출신입니다. 마산은 인구 30만 정도의 소도시입니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사라진 도시입니다. 창원시에 편입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릴 때에는 창원에서 마산으로 유학 오는 친구들이 한 반에 3~5명 정도는 꼭 있었습니다. 마산 토박이들은 창원에서 마산으로 유학오는 친구들을 ‘촌놈’이라며 은근히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마산고등학교는 명문고로서 서울대를 30~50명 정도 합격시킨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고교평준화가 되어 소위 '뺑뺑이'를 돌려 고등학교에 진학하긴 하였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동기 중 10명(재수생 포함)이 서울대에 합격하였습니다.
당시 한 반 인원이 65~75명 정도였고, 반 1등은 서울대 충분히 갈 수 있다는 생각이 공유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마산(저는 아직 심리적으로 창원에 복속된 '창원시 마산합포구' 등의 단어를 인정하지 못하겠습니다)은 서너 학교에서 1명을 서울대에 합격시키기도 힘들다고 합니다(일반고 기준).
코로나로 인해 서울대가 지역균형선발전형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완화했습니다. 기존 4개 영역(국,수,영,탐) 중 3개 영역 이상 2등급 이내였던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올해에는 3개 영역 이상 3등급으로 완화되었습니다.
겨우 한 단계 등급을 낮춰준 것이 아닙니다. 2등급은 상위 11%까지고, 3등급은 상위 23%까지입니다. 등급으로는 겨우 한 단계 낮아졌지만 백분율로는 2배 넘게 넓어진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를 3등급 3개를 받으면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파격적인 상황입니다.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은 학교별로 2명씩 학교장 추천을 받은 학생만 지원할 수 있는 전형이라 어차피 문과 1등, 이과 1등만 지원할 텐데 전교 1등한테 수능 최저를 3등급으로 낮춰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질문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80점 이상이면 백분율에 상관없이 누구나 2등급을 받을 수 있는 절대평가 영어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3개 영역 이상 3등급은 형식적인 조건일 것 같다는 이야기도 공감합니다.
상식적으로 설마 전교 1등이, 전 과목 1등급도 아니고 3과목 3등급도 못 받을까 싶은 분들이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올해는 특수한 경우이니 예년의 경우로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습니다. 실제 일반고에는 3개 영역 이상 2등급을 못 받는 전교 1등이 많습니다.
아래 표를 보십시오.
믿을 수 없는 일이 이렇게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서울대 지균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불합격한 학생이 5,357명입니다. 매년 1,000명이 넘는 학생, 지균 응시자의 절반이 수능 최저 미충족으로 서울대를 불합격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리가 있는데도 학생을 뽑지 않고 선발인원을 정시로 넘겨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우측 주황색 미선발 인원). 경쟁률이 높아서 불합격한 게 아니라 애초부터 서울대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조차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래 표를 보시면 지방 중소도시 상황은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5개년 평균에서 서울은 수능 최저 미충족 비율이 33.8%였지만 광역시는 41.5%, 중소도시는 49.3%를 기록했습니다. 즉, 서울은 전교 1등의 1/3, 중소도시는 거의 절반이 2등급 3개를 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이 제가 반복해서 아쉬워하는 부분입니다.
저도 20년 이상 강사생활을 하였고, 그 중 15년을 고3을 지도하였습니다. 무릇 전교 11등 하는 학생은 기본 이상의 학습 능력을 갖춘 학생이고, 그의 성실성과 자기 주도 학습능력은 대단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지 않은 학생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학생을 3년을 가르쳐서 2등급 3개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참고로 지금 정시로 대학을 갈라치면, 수능에서 2등급 3개면 정시로는 국민대, 숭실대, 세종대, 단국대 정도를 합격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건국대, 동국대, 홍익대도 하위권 학과는 노려볼 수 있지만 상위권 학과는 어렵습니다.
또 일반고 중에는 수능 준비를 거의 포기한 학교도 많다고 합니다. 수시모집 비율이 높아지니 수시에 올인하고 전략적으로 수능 준비를 줄인 것인데 이게 패착이 된 것입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린 '수능없이 상위권 대학 없다'라는 것을 학교에서는 몰랐을까요, 아님 애써 무시하고 차선만을 노린 것일까요?
어쨌든 올해는 코로나라는 특수상황으로 인해 서울대 지균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대폭 완화됐고, 일반고 학생들에게는 서울대로 가는 문이 그 어느 해보다 활짝 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입시소식 > 대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능 한 방으로 인생역전? (0) | 2020.10.11 |
---|---|
의치대 경쟁률 (0) | 2020.09.25 |
지방명문대냐, 인서울대학이냐? (0) | 2020.09.12 |
검정고시와 코로나 (0) | 2020.09.10 |
2021학년도 수시전형 변동사항 정리 (0) | 2020.08.20 |